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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53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의 개막 - 2 3월 말, 스탈린은 체코슬로바키아 지도자들을 만나 자기 의사를 밝혔다. "독일 놈들과 싸울 것이고, 끝까지 그럴 겁니다. 하지만 동맹국들이 독일을 살려주고 그들과 뒷거래를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독일 놈들은 가차 없이 대하지만, 동맹국들은 애들 다루듯 합니다." 서방연합군이 소련군보다 먼저 베를린에 도달하기 위해 내달릴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스탈린은 가장 큰 전리품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3월 29일, 야전군 지휘관인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와 이반 코네프 원수에게 모스크바로 날아와 제3 제국 수도를 함락시키는 계획을 짜라고 명령했다. 이틀 뒤인 4월 2일, 스탈린은 휘하 지휘관들을 모아 베를린에 대한 최후 공세에 협의했다.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를 앞서 불려 설명하.. 역사 2021. 3. 18.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의 개막 - 1 "미국의 주요 수단은 자유고, 러시아의 주요 수단은 예속이다. 두 나라는 시작점이 다르고 과정도 다르지만, 세상의 절반의 운명을 뒤흔들려는 '하늘의 뜻'으로 나타낼 것이다" - 마이클 돕스 (워싱턴포스트 기자) - 1943~1944년 히틀러는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와 싸우기 위래 180~190개 사단을 투입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서방 연합군과 싸우는 독일군 병력은 40~50개 사단에 불과했고 이탈리아에는 15~20개 사단이 고작이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는 않았다. 소련군의 희생이 늘거나 줄면 미군의 희생은 그와 반비례했다. 러시아인이 더 많이 죽을수록 미국인은 덜 죽었다. 스탈린은 저택 1층 스타프카에 들러 군사고문들과 회의를 했다. 스탈린은 지난주 내내 베를.. 역사 2021. 3. 15.
최고 북방군의 수장, 이괄의 난 - 4 이괄이 한양으로 입성하자, 한양에 남아있던 하급 관리들은 관복을 차려입고 나와 영접했다. 한양 주민 일부는 길을 닦고 황토를 뿌려 이괄의 군대를 환영했다. 그리고 이괄이 한양으로 왔던 흥안군(선조의 10번째 아들)을 새 왕으로 옹립하니, 조선 천하에 2명의 왕이 양립한 것이었다. 이괄은 자신이 옹립한 새 왕인 흥안군의 이름으로 한양 인근 고을에 선전관을 파견했다. 한양 인근 고을은 크게 혼란에 빠졌으며, 때마침 인조가 보낸 선전관도 한양 고을에 도착하였다. '한양은 역적에게 넘어갔다. 한양에서 오는 선전관은 모두 목을 베어라!' 인조는 있는 힘을 다해 충청도 경계로 들어갔으며, 이때 충청병사 이완(이순신 장군의 조카)이 인조를 맞이하였다. '전하께오서 역적 무리의 화를 당하셔 이리 고초를 겪으시니... .. 역사 2021. 3. 9.
최고 북방군의 수장, 이괄의 난 - 3 이괄이 이끈 반란군은 순식간에 대동강을 넘어 황해도로 진입했으며, 정충신과의 황주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이괄의 군대는 예성강 방어선을 뚫기 위해 계속 전진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황주 전투에서 패전했던 정충신이 추격하고 있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정충신은 이괄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정충신이 아닌, 이중로를 주목해보자! 내가 첨부한 위 지도를 보면, 이중로의 군대는 예성강 방어선에 주둔하고 있다. 이중로는 조총에 관심이 많아 직접 사격술을 배웠다고 하며, 인조반정 때에는 인조를 도와 3등 공신에 책봉되었다. 이때 이중로는 예성강 방어의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그가 거느린 황해도 관군은 급히 동원되었기에 군사의 질이 매우 떨어졌다. 게다가 이중로는 예성강 방어에 부임하기 .. 역사 2021. 3. 7.
최고 북방군의 수장, 이괄의 난 - 2 1624년(인조 2) 1월 24일, 조선을 지켜야 할 최정예 북방군 13,000여 명은 이괄의 지휘 하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괄은 국경에 오래 일했었기에 국경 지역의 지리와 관군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괄 자신은 뛰어난 무장이었으며, 그 휘하의 북방군은 누차 언급했지만 조선의 최정예군이었다. 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괄의 본영이 위치한 영변 지역은 한양과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영변과 한양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인위적(성, 요새) · 자연적(대동, 예성, 임진강) 장애물이 있었다. 특히 평양성에는 도원수 장만이 5,000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으며, 평양성은 인조 때 대대적인 보수로 인해 강력한 요새가 되었다. 따라서 이괄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단기전으로 끝내기 위해서 주요 .. 역사 2021.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