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63

최고 북방군의 수장, 이괄의 난 - 1

한양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양 백성들은 깜짝 놀라 밖을 쳐다보았으며,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창덕궁은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반정군 지휘관 이괄은 말에서 칼을 들고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반정군은 순식간에 궁궐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이 반정군의 정체는 누구인가? 바로 능양군(인조)을 지지했던 서인 세력이었다. 하룻밤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광해군은 죄인으로 폐출되었으며, 조선의 새 지존으로 능양군(인조)이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 보내졌으며, 인조는 논공행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큰 공을 세운 이괄은 겨우 2등 공신에 봉해지고 김류와 이귀 등은 서인 세력은 1등 공신에 봉해졌다는 것이다. 이괄은 자.. 역사 2021. 3. 3.

수양대군(세조) - 조선의 군사력을 약화 시킨 역적

수양대군(세조) - 조선의 군사력을 약화 시킨 역적 조선왕조실록 中 문종이 수양 대군(문종의 동생, 세조)과 함께 부국강병에 대해 논하다 문종 대왕이 말하기를, "수양 대군(문종의 동생) 같은 사람을 병조 판서(국방부 장관)로 삼는다면 과인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세종 말년에 10년 넘게 국가의 정사를 대리 처리할 정도로 의욕을 쏟았던 문종. 얼굴이 잘 생기고 어린 나이에 외교적 예법에도 능해 중국 사신들이 탐낼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세자 시절 때 세종 말년 동안 너무 의욕적으로 일을 한 탓일까? 문종은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했고, 그의 어린 아들이 왕위에 집권했다(단종). "내가 영의정 부사와 병조 · 이조판서, 내외 병마 도통사(內外兵馬都統使)를 겸직할 것이니, 나의 뜻을 .. 역사 2020. 11. 13.

미국 건국의 역사

미국 건국의 역사 국가의 탄생 미국(United States)의 건국과정은 여타 다른 국가와 다를 바 없이 험난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필라델피아에 모여 독립선언을 발표했고 이들을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라 불린다. 영국과의 고된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 13개 주가 독립했고 건국의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하여 헌법을 재정하게 된다. 대부분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렀으나 강력한 정부의 존재 유무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강력한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 연방주의자(The Federalist), 강력한 정부는 영국 정부와 같이 횡포를 부릴 수 있다며 분권주의를 주장한 공화주의자(Republican, 반 연방주의자라고도 부른다)로 나뉘었다. ( 참고로 이 공화주의자와 현.. 역사 2020. 11. 9.

조선 시대, 중국 불법 어선 조업 단속 및 교전 상황

조선 시대, 중국 불법 어선 조업 단속 및 교전 상황 1500년(연산 6) 7월 9일- 백령도 북방 서해안 지점 이날 백령도 인근에서 해상 경비를 뛰고 있었던 조선 수군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척의 배가 출몰했다. 그러나 보통 왜선과는 달라 조선 수군은 가까이 다가가 검문 작업을 시작했다. 조선 수군 중 수색 대장 김익광이 외치기를, "나는 조선국 수군 대장 김익광이다! 너희들이 감히 우리 해상 경계에 침입하였으니, 순순히 검문에 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어선 측에서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조선 수군의 배를 향해 포위 기동을 실시했다. 수군 대장 김익광은 화살을 쏘고 화포를 발사했으며, 수군에서 사용하는 신호용 신기전을 쏘아 주변 수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신호용 신기전을 보고 주변의.. 역사 2020. 11. 2.

조선시대, 선조 시기의 화력 활용 사례(feat. 조총 덕후 선조)

조선시대, 선조 시기의 화력 활용 사례(feat. 조총 덕후 선조) 1592년(선조 25), 조선 8도 전체에서 조선군과 왜군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전쟁 초기에 경상도 전역이 왜군의 손아귀에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의 주력은 건재했다. 이때 박진(朴晋)이라는 자가 경주 근방에 주둔하다가 밤에 몰래 군사를 진격시켰다. 박진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움직인 것이다. 박진은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 일종의 시한폭탄)를 통해 경주를 탈환하기로 했다. 박진이 지휘하는 조선군은 경상도 경주 근방에 도착하였고, 이어 비격진천뢰를 성 안으로 발사하여 왜군 진영 안에 떨어뜨렸다. 성 안으로 이상한 쇳덩이라가 날아오자, 왜군은 이게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와 살폈다.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다투어 구경하면서 서로 밀고 .. 역사 2020. 10. 27.

조선시대, 미제 사건 - 6세 아이 다리 절단 사건

조선시대, 미제 사건 - 6세 아이 다리 절단 사건 이 사건은 조선 시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은 중종 대왕 시대의 이야기다. "연산은 어딨느냐? 연산을 잡아라!" 1506년, 수많은 악행과 폭정을 저지른 연산군이 폐위됐다.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成希顔)과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박원종(朴元宗)이 군사를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바로 조선의 11대 군주, 중종(中宗)이다(중종반정). 조선의 신하들은 모두 기뻐서 뛰며 춤추었고, 진성 대군은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해,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고 사면령을 반포했다. 그리고 모두가 함성을 외치니,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리라. 1533년(중종 28) 2월 16일.. 역사 2020. 10. 26.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일생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일생 1335년, 이성계 탄생. 태조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우뚝한 콧마루와 임금다운 얼굴로서, 신체는 영특하고 준수하며, 지략과 용맹은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어릴 때 화령과 함주 사이에서 노니, 북방 사람들로서 매를 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이성계와 같이 뛰어나게 걸출한 매를 얻고 싶다." 1356년, 이성계의 나이 22세. 아버지와 함께 고려 왕조의 명을 받들어 쌍성총관부 탈환에 기여하다. 그의 조상은 대대로 원나라의 관직을 받았지만, 원이 쇠퇴하자 고려 왕조에 투항하였다. 이후 고려의 벼슬을 받았고, 이성계 부자(父子)는 동북면(함경도)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한편 이성계의 격구 실력은 대단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몹시 놀라면서 그 실력을 칭송하였다. 1361.. 역사 2020. 10. 24.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전투의 재구성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전투의 재구성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성이며, 조선 시대에는 수도권 일대를 방어하는 중요 요새였다. 1624년(인조 2)에 대대적인 축성 작업이 시작되었고, 1636년(인조 14)에는 수어사 이시백이 1만 2천 7백여 명의 대군을 동원하여 대규모 기동 훈련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남한산성에는 4개의 문(門)과 관아와 창고 등이 있었고, 또한 국왕의 임시 처소인 행궁과 함께 군사 훈련을 위한 연무장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경기도 광주의 토지 2천여 결을 남한산성에 배속하게 하여, 수비군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의 둘레는 약 6천여 보(步) 정도라고 한다(기록마다 다 다름). 1636년(인조 14), 드디어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 경내로 침략하였다. 청군은 .. 역사 2020. 10. 23.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 전투 당시의 조선군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 전투 당시의 조선군 청군의 남한산성 포위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동안 소규모 접전에서 조선군은 수십 명의 청군을 사살했다. 청군은 1636년 12월 23일, 1만여 명의 대군을 동원해 남한산성 전체를 포위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다. 조선군 장군이 뛰어와 인조에게 아뢰기를, "전하, 오랑캐의 공세가 재개되었는데, 그 수가 1만여 명에 달합니다!" 인조가 이르기를, "내가 직접 성벽으로 거동해 오랑캐와 싸우는 군사들을 위로하겠다. 융복(임금이 입는 군복)을 가져오라!" 인조는 융복 차림으로 성벽으로 거동했고, 왕이 전장에 몸을 드려내자 조선군은 모두 엎드려 절을 했고, 어떤 조선군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있었다. "저희들은 모든 힘을 다해 오랑캐의 목을 베어 반드시 전.. 역사 2020. 10. 22.

임진왜란 당시 기근, 역병, 식량, 추위

임진왜란 당시 기근, 역병, 식량, 추위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지금까지 조선이 맞닥뜨린 왜군의 규모는 수천여 명 수준이었지만, 임진년 변란은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왜군의 규모는 거대했다. 그 규모는 무려 '약 17만 명'. 그렇다면 당시 조선 왕조엔 어느 정도의 군대가 있었을까? 다음 지도와 함께 조선 왕조의 지역별 군대를 파악해보자. [조선 왕조] 경기도 주둔군 : 19,300명 [조선 왕조] 충청도 주둔군 : 10,800명 [조선 왕조] 강원도 주둔군 : 2,000명 [조선 왕조] 황해도 주둔군 : 8,800명 [조선 왕조] 평안도 주둔군 : 15,300명 [조선 왕조] 함경도 주둔군 : 10,200명 [조선 왕조] 경상도 주둔군 : 77,000명 [조선 왕조] 전라도 주둔군 : 25,000.. 역사 2020.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