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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의 역사

|||||||||||||| 2020. 11. 9.

미국 건국의 역사

미국 건국의 역사

국가의 탄생

미국(United States)의 건국과정은 여타 다른 국가와 다를 바 없이 험난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필라델피아에 모여 독립선언을 발표했고 이들을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라 불린다. 영국과의 고된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 13개 주가 독립했고 건국의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하여 헌법을 재정하게 된다. 대부분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렀으나 강력한 정부의 존재 유무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강력한 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 연방주의자(The Federalist), 강력한 정부는 영국 정부와 같이 횡포를 부릴 수 있다며 분권주의를 주장한 공화주의자(Republican, 반 연방주의자라고도 부른다)로 나뉘었다. ( 참고로 이 공화주의자와 현재 공화당은 큰 관계가 없다)

당시 연방주의자의 대표주자였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
공화주의자(반연방주의자)의 대표 주자였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당신 연방주의자의 대표주자였던 존 애덤스와 공화주의자의 대표 주자였던 토마스 제퍼슨 이 둘은 당연 라이벌이었으며 정치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부딪혔다.

미국이라는 국가를 만들기 전, 연방주의자나 반연방주의자 중 한쪽이 대통령으로 앉으면 권력의 불균형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에 독립군 중에서도 중립적이고 아무도 불평하지 인물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초대 대통령으로 앉히게 된다.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으로 종신직을 제안받았으나 재임만 한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이것이 관습화 되어 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을 하기 전까진, 대통령은 재임만 하는 게 관행처럼 남는다.

헌법의 탄생

사실 초대 대통령을 뽑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헌법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와 그것의 지위가 큰 화두로 꼽혔다.

승전 후, 필라델피아의 제헌의회에서 다시 모인 이들은 제임스 메디슨이 초안을 만든 연방 헌법(The Constitution of United States)의 비준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 초안을 메디슨이 만들어서, 메디슨을 헌법의 아버지(Father of Cons)라 부른다)

공화주의자 - 강력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며 영국과 같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다.

연방주의자 - 중앙 정부가 있어야 각 주와 국민들이 와해되지 않고 결속력을 가진다.

이런 논란 속에 양 측 견해는 좁혀지지 않았고 각 주들은 헌법의 비준을 보류하는 상황이 생긴다. 결국 연방주의자였던 제임스 메디슨, 존 제이, 알렉산더 해밀턴은 연방헌법의 필요성을 논제로 하는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 Paper)를 발표한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헌법의 초안자가 참여하여 만든 연방 헌법의 해석문에 해당하며 지금까지도 미국 연방 헌법을 해석하는데 가장 큰 참고서적으로 꼽힌다. 연방주의자들의 이러한 노력 끝에 1784년 9개 주가 비준하면서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이 제정된다. The Constitution이라 불리는 이 헌법은 대통령, 의회, 사법부, 연방, 헌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제퍼슨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며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헌법을 추가로 제안한다. 연방주의자들은 반-연방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메디슨이 새로운 헌법의 초안을 작성했고 그것이 1786년 비준된다. The Amendments 라 불리는 수정 헌법으로 수정 헌법은 국민(주민), 주의 권한과 형사재판에서의 권리 등을 담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판 권리 장전(US Bill of Right)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미국의 극우파들은 수정 헌법은 헌법이 아니고 오로지 헌법(The Cons)만 헌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현재 미국은 헌법과 수정 헌법 모두 헌법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의회의 탄생

양원제(의회가 2개인 국가) 중 대표적인 나라라 하면 미국이 생각날 것이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지는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으로 나뉜다. 역시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 간의 갈등이 의회 건립과정에서도 표출되었지만 각 주(State, 州) 간의 갈등이 새로이 나타난다.

인원이 적은 주 - 주 간의 평등을 위해 주마다 동일한 인원을 뽑자

인원이 많은 주 - 주의 규모와 크기에 맡게 비례해서 뽑자

결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의회를 양원으로 나누고 각 주들의 의견을 나누어서 받아들이기도 결정한다.

1780년 인원이 적은 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상원(Senate)은 주마다 2명씩 뽑는다. 참고로 1917년 전까진 주 의회에서 선출된 2명을 연방 의회에 보냈으며 연방에서 주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지역구 의원 느낌)

상원의 임기는 6년, 현재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겸직한다.

인원이 많은 주의 의견을 수렴해서, 하원(The House of Representative)은 인구에 비례하여 의원을 뽑는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와 같은 주들은 50~60명씩 하원의원이 선출되는 반면, 사우스 다코다 같은 주는 1명 남칫 선출된다. 하원의 임기는 4년이다.

사법부의 탄생

개인적으로 미국 사법부의 탄생이 가장 흥미진진하다. 미국의 연방 헌법엔 사법부와 관련된 내용은 3줄 밖에 없다.

1. 사법권은 1개의 연방대법원과 의회에서 설치한 하급 법원으로 구성한다. 판사는 별도의 이유가 없으면 해임되지 않으며 보수를 받는다.

2. 외교(대사, 영사 등의 임명 포함), 해상, 2개 주 이상, 외국과 미국 민간의 분쟁 등을 조율한다

3. ~~

연방주의자이자 친영파로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에덤스는 대통령 선거에서 반연방주의자이자 친 불파인 제퍼슨에게 패배한다.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 직전, 존 애덤스는 국무장관 존 마셜(John Mashall)을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고 비어있는 판사직에 연방파 인물로 채워 넣는다. 그중 한 명이 윌리엄 마버리(William Marbury)로 그는 콜롬비아의 치안판사(영장 발부, 보석 업무만 하는 판사)에 임명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하루 밤사이에 임명해버려 그에게 임명장을 주지 못한다. 임명장을 받지 못한 마버리는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요구했으나 반 연방주의자였던 제퍼슨이 줄리가 없었고, 법원조직법(헌법 아님)에 있는 내용에 따라 연방대법원에 임명장을 줄 것을 대통령에게 명령해달라고 소송을 건다. 당시 법원조직법 13조는 마버리와 같이 이런 직위의 임명에 있어 1심은 연방대법원이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존 마셜과 연방대법관들은 이 문제에 상당히 골머리를 썩혔는데 마버리 손을 들어주면 제퍼슨이 이행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법원의 지위는 떨어질 것, 제퍼슨의 손을 들어주면 반 연방주의자들에게 무릎을 꿇어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무엇을 택해도 지는 싸움에서 마셜은 희대의 명 판결을 남긴다.

"마버리는 법원조직법 13조를 근거로 하여 자신의 임명장을 교부해달라는 집행명령을 연방대법원에 요구했다. 그러나 헌법에서 정하는 바, 연방대법원은 대사, 영사, 외교에 대한 임명에만 1심 관할권을 가지며 나머지 문제에 대한 명령은 그 하급심이 담당한다. 따라서 법원이 1심을 담당해야 한다는 법원조직법 13조는 연방 헌법의 3조 2항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법원조직법 13조는 위헌(Unconstitutional)에 해당하므로 그 법을 파기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법은 연방 헌법에 구속되며 연방대법원은 각 법이 헌법에 합치하는지에 대해 심판할 권한이 있다. 그러므로 마버리가 제기한 소송은 재판부가 관할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각하한다. " (영문 해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다)

애초에 3권 분립을 하면서 사법부(법원)는 의회가 만든 법을 기술적으로 해석하는 기관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법부 자체가 큰 메리트가 없었는데 4대 대법원장과 그의 대법관들이 국가의 법을 심판할 위헌심판권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버리는 각하 처리되었으므로 치안판사가 되진 못했지만 제퍼슨의 의도와는 달리 더욱 강력한 연방이 탄생해버린 것이다.

마버리 曰 마셜형 ㅠㅠ 제퍼슨이 임명장 안 줘요

제퍼슨 曰 마셜 병신 ㅋㅋ 판결해봐, 어떻게 해도 안 따를 거임

마셜 曰 씨발

마셜 曰 ㅇㅋ 법이 헌법에 안 맞음 맞는지 안 맞는지는 법원이 판단함

제퍼슨 曰??

마셜 曰 그러므로 우리가 최고야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갔으며 이런 판결 직후, 제퍼슨은 편지 한 통을 보낸다

"대법원이 군대도 못할 짓을 해버렸다. 그들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쿠데타를 해냈다"

라며 당시 다급하고 당황한 심정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연방대법원의 탄생신화(?)로 회자되며 현재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 의회가 인준한다. 연방대법관은 총 9명으로 4명은 보수성향, 4명은 진보성향, 1명은 중도성향의 판사로 구성한다. (그래서 캐스팅 보트권을 쥐고 있는 중도성향의 판사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다)

분열과 통합

이렇게 3개의 부처들이 탄생했으니 분쟁은 끝났을까? 당연히 아니다. 반 연방주의자들은 주권 주의자가 되었고 연방주의자들과 항상 부딪혔다. 주권 주의자들은 미국이 주의 연합(States)이라 생각했기에 United States are(복수형)으로 표기했다. 반면 연방주의자들은 미국이 하나의 국가(United States)라 생각했기에 United States is(단수형)로 표기했다. 주권 주의자로 대표되는 곳이 남부주였으며 북부주는 연방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러다 이들이 과세와 관세 문제로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되었고 연방 헌법과 연방 정부의 우위성을 거부하며 주권주의를 표방한 남부의 11개 주가 연방을 탈퇴한다.

그리고 연방주의 성향의 23개 북부주와 충돌한 것이 1861년 일어난 남북전쟁(America Civil War)으로 남북전쟁 당시, 북부군은 연방주의자였으므로 남부군들이 속칭 연방 놈들(The Federal)이라 불렀다.

그래서 Federal란 의미에 북부 군이라는 뜻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부연합(Confederate South Union)은 연합(confederate)을 사용했기에 사(死)어가 되었지만 confederate엔 반 연방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공화당(Republican Party, 지금의 그 공화당이 맞다)을 세운 링컨이 연방의 대통령으로 남부와의 싸움에서 이겼고 건국 이래로 이어진 연방주의자와 주권 주의자 간의 길고 힘든 싸움이 일단락된다. 이로써 하나의 미국(United States)이 정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강력한 정부가 미국에 자리 잡게 된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미국에서 존경하는 대통령 순위에 드는 것은 분열된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통합한 통일 대통령과 같은 느낌에서 이지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국민을 위한 대통령, 흑인 해방의 선구자와 같은 이유는 아니다.

물론 연방주의자와 주권 주의자 간의 싸움이 완벽히 끝난 것은 아니며 연방 법 집행관과 관련된 문제, 강력한 중앙정부 주도의 개입 문제에서 항상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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