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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17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 전투 당시의 조선군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 전투 당시의 조선군 청군의 남한산성 포위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동안 소규모 접전에서 조선군은 수십 명의 청군을 사살했다. 청군은 1636년 12월 23일, 1만여 명의 대군을 동원해 남한산성 전체를 포위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다. 조선군 장군이 뛰어와 인조에게 아뢰기를, "전하, 오랑캐의 공세가 재개되었는데, 그 수가 1만여 명에 달합니다!" 인조가 이르기를, "내가 직접 성벽으로 거동해 오랑캐와 싸우는 군사들을 위로하겠다. 융복(임금이 입는 군복)을 가져오라!" 인조는 융복 차림으로 성벽으로 거동했고, 왕이 전장에 몸을 드려내자 조선군은 모두 엎드려 절을 했고, 어떤 조선군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있었다. "저희들은 모든 힘을 다해 오랑캐의 목을 베어 반드시 전.. 역사 2020. 10. 22.
임진왜란 당시 기근, 역병, 식량, 추위 임진왜란 당시 기근, 역병, 식량, 추위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지금까지 조선이 맞닥뜨린 왜군의 규모는 수천여 명 수준이었지만, 임진년 변란은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왜군의 규모는 거대했다. 그 규모는 무려 '약 17만 명'. 그렇다면 당시 조선 왕조엔 어느 정도의 군대가 있었을까? 다음 지도와 함께 조선 왕조의 지역별 군대를 파악해보자. [조선 왕조] 경기도 주둔군 : 19,300명 [조선 왕조] 충청도 주둔군 : 10,800명 [조선 왕조] 강원도 주둔군 : 2,000명 [조선 왕조] 황해도 주둔군 : 8,800명 [조선 왕조] 평안도 주둔군 : 15,300명 [조선 왕조] 함경도 주둔군 : 10,200명 [조선 왕조] 경상도 주둔군 : 77,000명 [조선 왕조] 전라도 주둔군 : 25,000.. 역사 2020. 10. 19.
조선시대, 조선의 여진족 학살 조선시대, 조선의 여진족 학살 이 노토 부락은 좌우로 높은 산과 절벽이 있고 마을 안은 매우 넓다. 토지는 비옥하고 그 가운데로 큰 냇물이 흐르며 모든 부락들은 그 물을 끼고 살고 있다. 집들 역시 즐비하며 살림의 넉넉함은 다른 여진 부락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평소 여진족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그들 역시 가축에게 풀을 먹이며 곡식을 재배하는 등 평화롭고 목가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에서 불화살이 쏟아지더니, 맹렬한 굉음이 온 하늘을 준동하였다. 평화롭던 노토 부락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고, 절벽 위에서 불화살과 대포알이 쏟아졌다. 노토 부락민은 비명을 지르며 즉각 도망가기 시작했고, 마을은 금세 온 비명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모래 바람이 하늘을 가리더니, 정.. 역사 2020. 10. 17.
조선 시대, 왕의 북벌 추진과 신하들의 반대 조선 시대, 왕의 북벌 추진과 신하들의 반대 『성상(임금을 높이 부르는 말)이시여, 고구려를 침공하다 패퇴한 당 태종의 고사를 잊으셨습니까!』 당나라 황제 이세민은 청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수나라 말기의 여러 전장을 누비며, 마침내 통일 제국 당나라를 세우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이세민은 수나라 말기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나타난 여러 군웅들을 토벌하였고, 또한 돌궐을 정벌하고 서역을 원정하는 등 제국의 영향력을 서북방 변경에 떨쳤다. 그러나 이세민은 자신이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한 사업이 있었으니... 그는 10만여 명이 넘는 대병으로 고구려 원정을 감행하였고, 천하의 뛰어난 무장들 역시 원정에 참여하였다. 물론 이때 고구려는 요동 지역의 방어선이 붕괴되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이세민은 안시성.. 역사 2020. 10. 16.
조선 시대, 초기 부국강병을 꿈꾼 군주와 관료들 조선 시대, 초기 부국강병을 꿈꾼 군주와 관료들 고려 말기, 이성계의 활약 고려 말기, 수없이 많은 이민족의 준동으로 고려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홍건적 20만의 침공으로 고려 왕조는 수도가 함락되기도 했고, 왜구의 계속된 침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해안가 지방이 쓸쓸해졌고, 내륙 지방까지 왜구가 준동했다. 그때마다 고려 왕조는 이성계를 찾았으니, 이성계 군대는 이 난세에서 그야말로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1380년, 이성계가 이끈 친병(親兵)이 황산에서 1만여 명의 왜구를 대파했는데, 고작 70여 명의 왜구가 살아서 도망쳤다. 이성계는 항상 출정할 때마다 전장에서 소라로 만든 군사 악기를 부르게 했는데, 이는 이성계 군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저 소리는... 이것은 이성계의 차거(硨磲)로 만.. 역사 2020.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