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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경제4

일본, 버블보다 더 큰 기업의 붕괴 일본, 버블보다 더 큰 기업의 붕괴 이 표는 80년대 일본의 위엄이니 뭐니 하면 제일 많이 보는 표였을 것이다. 오늘 다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표를 먼저 보는 게 가장 이해가 될 것 같다. 1987년, 전 세계 50대 기업 순위 중 절반 이상이 일본 기업이고, 21세기가 되면 일본이 세계 1위가 된다는 꿈에 빠져있던 때였다. "일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라는 말을 스스로 하고 다닌 시기다. 이제 시계를 1987년에서 15년 전으로 돌려서 1973년으로 가보겠다. 1973년 2월, 일본은 외환관리법을 바꾸어 기존의 고정환율제(1945~1973.2)에서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1945년부터 1973년 2월까지 1달러는 무조건 360엔이었다. 물론 1971.12부터 1973.2까지는 1달러에 30.. 역사 2020. 8. 30.
다큐 - 욕망과 혼돈의 기록:도쿄 1991 다큐 - 욕말과 혼돈의 기록:도쿄 1991 명품 브랜스 숍과 고급술집이 밀집해 있는 일본 도쿄의 긴자 거리 980년대 이곳은 사치와 허영, 富에 대한 욕망이 한대 뒤섞여 흥정이고 있었다. 긴자 호스티스의 팁으로 수억원의 가게와 패물이 오가는 소설같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 거품시절의 긴자였다. 그 거품의 중심에 부동산이 있었다. 영화 울트라맨, 고질라 등의 미술감독으로 최고의 명성을 쌓아온 스즈끼씨, 이제 사람들은 그를 개인파산자 스즈끼씨로 기억한다. 부동산 버블의 최전선에 있었던 부동산 버블전사 고지마 노부타카 그는 최고의 사업수완으로 총자산 8천억엔의 자산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후 일본 최고의 빛쟁이로 전락해 버렸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부를 이뤄냈고, 이들이 모두 파산하게 된것도 1991년.. 역사 2020. 8. 29.
플라자 합의 -일본 버블 경제의 원인 플라자 합의 -일본 버블 경제의 원인 0. 멈출 줄 몰랐던 일본의 성장, 이에 불안감을 느낀 미국 1970년대 소니가 워크맨이라는 카세트를 처음 선보인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은 소니를 비롯한 수출기업들이 주축이 되면서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결과적으로 80년대의 고속성장을 알리게 만든 뿌리가 되면서 수많은 외화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전자업계와 자동차 업계는 그 어떤 국가들조차도 따라 잡기 힘들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었다. 이들 업계 기업들은 예상 밖의 기술력과 창의성 그리고 섬세함까지 내세우면서 소비자들을 매료시켰고 소비자들은 앞다투어서 일본산 제품을 열렬히 구매하면서 일본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쌓게 해 주었다. 외화는 점차 늘면서 일본은 제1의 경제대국.. 역사 2020. 8. 28.
일본의 버블 경제 일본의 버블 경제 위 차트는 1980년대 미국의 고금리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왜 이런 고금리 정책을 펼쳤냐면 바로 시중의 돈을 빨아들여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한 물가상승을 잡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출금리 상승으로 인해 자금 확보가 힘들어진 미국 제조업체들이 서서히 망가지는데 이때 우수한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일본이 등장했다. 미국은 이때부터 엄청난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보게 되는데 미국은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이 호텔은 영화 "나 홀로 집에 2"에 등장했던 뉴욕의 플라자 호텔이다. 이곳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G5 재무장관들이 모여 "플라자 합의"를 하게 되는데 미국은 자국 제조업을 .. 역사 2020.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