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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3

일본, 버블보다 더 큰 기업의 붕괴 일본, 버블보다 더 큰 기업의 붕괴 이 표는 80년대 일본의 위엄이니 뭐니 하면 제일 많이 보는 표였을 것이다. 오늘 다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표를 먼저 보는 게 가장 이해가 될 것 같다. 1987년, 전 세계 50대 기업 순위 중 절반 이상이 일본 기업이고, 21세기가 되면 일본이 세계 1위가 된다는 꿈에 빠져있던 때였다. "일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다."라는 말을 스스로 하고 다닌 시기다. 이제 시계를 1987년에서 15년 전으로 돌려서 1973년으로 가보겠다. 1973년 2월, 일본은 외환관리법을 바꾸어 기존의 고정환율제(1945~1973.2)에서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1945년부터 1973년 2월까지 1달러는 무조건 360엔이었다. 물론 1971.12부터 1973.2까지는 1달러에 30.. 역사 2020. 8. 30.
태평양전쟁 패전국 일본은 어떻게 경제성장을 했을까?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펼친 일본은 핵폭탄 두방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게 되었다. 포츠담 선언 수락 후 일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약이 주어지게 되었다. 공정한 실물 배상의 징수를 가능케 하는 산업은 허용 전쟁을 위한 재군비에 도움이 되는 산업은 금지 장래 세계 무역에의 참가는 인정 이 이면에는 미국이 포츠담 선언 원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소비재용의 경공업은 일본에게 허용한다는 문안만 있었고, 중공업은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즉 비군사화를 위해 공업 수준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당시 연합국군 최고사령관으로 맥아더가 임명되고 극동위원회가 결정하는 점령정책이 실시되었는데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대일 정책의 결정권을.. 역사 2020. 8. 22.
19세기때 일본은 어떻게 선진국 반열에 올랐을까? 1854년 일본은 미국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개항을 당하게 되었다. 자칫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오히려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칸막이식 자본축적이라는 서구 열강의 자본축적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당시 4대 재벌이었던 미쓰이, 미쓰비시, 야스다, 스미토모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해주며 고정자본이 소요되는 업종을 담당시켰다. 재벌 즉 대자본과 중소자본 간에 철저하게 장벽을 설치해서 상호 간의 영역에 대해선 건들 수 없도록 만들었다. 즉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었고,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의 업종을 절대로 잠식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재정적인 혜택은 대기업 한정이었고, 중소기업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단 .. 역사 2020.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