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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

|||||||||||||| 2020. 9. 7.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호주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하고,

육군 2개 대대 + 지원부대 10657명,

항공모함 1척과 구축함 2척 등 해군 4507명,

공군 1개 전투기 대대 2000명,

도합 17164명을 파병해서 부산에서 UN의 북진 단계부터 참여했다.

사리원 전투, 영유리 전투, 박천 전투, 가평전투, 마량산 전투 등 무수한 전투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평 전투와 마량산 전투에서 훌륭한 활약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20대 경 항공기와 1800여 명의 병력만을 보유해서 공군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공군 전력을 파병한 국가는 8개 국가뿐이었다. 한국전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초기엔 F-51 무스탕 전투기가 실전 배치되었는데 호주군은 F-51을 주기종으로 하는 77 비행대대를 전쟁 도중 제트 전투기인 글로스터 미티어로 기종 변경하고 1만 9천 회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주로 지상 공격기로 활용되었다고 함)

참전 조종사 중 1/4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공군이 부족하던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을 줬고 전투기가 부족했던 대한민국 공군에 전투기 7대를 기증해서 전력 증강에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호주공군들이 사용했던 제트 전투기
호주 공군이 한국 공군에게 기증한 전투기

호주 육군의 전투로 가장 알려진 건 가평전투이다.

1.4 후퇴 이후 4월 23일부터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가 펼쳐졌는데 한국 육군 6사단이 중공군에게 돌파당한 후 경기도 가평 인근으로 내려왔고 추격 남진 중이던 중공군 118사단에 맞서 호주 3대대가 한국군 철수를 엄호하며 방어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이틀 동안 호주 3대대가 가평 전선을 사수하고 뉴질랜드와 캐나다 포병이 폭격해 7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낸 게 바로 가평전투이다. 3대대의 전투 승리로 4월 24일 밤, 중공군은 퇴각하게 되는데 서울과 불과 56km 떨어진 곳이어서 만약 밀렸다면 서울까지 속수무책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았다고 할 만큼 중공군이 서울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재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값진 승리였다고 한다. 호주군 33명과 뉴질랜드군 3명이 전사했지만 1개 대대로 중공군 1개 사단을 막고 3000여 명 여명 사상자를 내고, 호주군 33명과 뉴질랜드군 3명이 전사했지만 1개 대대로 중공군 1개 사단을 막고 3000여 명 사상자를 내고 후퇴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 공로로 3대대는 트루먼 미 대통령으로부터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얻고 이후 3대대는 호주 최고의 정예부대로 인정받아서 공수부대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3대대는 호주에서 가평부대로 알려져 있고 매년 4월 24일은 '가평의 날'로 가평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날이라고 한다. 시드니엔 가평 이름을 딴 거리가 있고 가평전투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기념비의 석재는 가평에서 공수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평에도 호주 전투 기념비가 있다. 그런 것이 호주에도 있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가평전투를 기념하는 기념주화를 만들었고 2003년에는 한국전쟁 종전(정확히는 휴전이지만) 50주년을 기념해서도 기념주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분이 바로 가평전투에서 3대대를 지휘하던 프랜시스 하셋 경이다. 이후 호주 육군 참모총장을 거쳐 호주방위군 참모총장이 된 이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2008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호주는 호주의 현충일인 ANZAC day가 있다. ANZAC (Australia and New Zealand Army Corps) 데이는 우리나라 현충일과 비슷한 호주 국경일이다. (법정 휴일) 전쟁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는 날로써 호주의 대도시에서 퍼레이드를 하는데 몇 장의 사진을 소개하겠다.

한국전 참전 퍼레이드 ( 1956년부터 철수를 시작해서 1957년에 완전히 우리나라에서 철수해서 참전 기간이 1950-1957)

아직 살아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도와줘서 고마워요 하나 들어주고

캔버라 시드니 멜버른 등 호주 곳곳에서 한국전 참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여긴 melbourne의 botanic garden인데 아마 ' 나는 가수다 호주 편'을 본본 사람들이라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공연했던 시드니 마이어 뮤직볼의 반대편에는 전쟁 기념관이 있다.

멀리서 본 전쟁 기념관

가까이에 가보니 한국전쟁 참전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전쟁 기념관에서 바라본 멜버른 도심. 도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한국전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캔버라에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이 조성되었고 전쟁기념관에는 한국전쟁 전시실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엔 이미 기념비가 있고 골드코스트에도 기념공원 추진 중이라고 한다. 80세가 넘는 참전 용사들은 100년이 걸릴 거라던 전후 복구를 신속히 마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참전용사로써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으로 2011 한국-호주 수교 50주년 기념 우정의 해를 맞아 길라드 호주 총리가 가평전투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다음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호주 장병의 넋을 기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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