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북방군의 수장, 이괄의 난 - 2
1624년(인조 2) 1월 24일, 조선을 지켜야 할 최정예 북방군 13,000여 명은 이괄의 지휘 하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괄은 국경에 오래 일했었기에 국경 지역의 지리와 관군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괄 자신은 뛰어난 무장이었으며, 그 휘하의 북방군은 누차 언급했지만 조선의 최정예군이었다.
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괄의 본영이 위치한 영변 지역은 한양과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영변과 한양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인위적(성, 요새) · 자연적(대동, 예성, 임진강) 장애물이 있었다. 특히 평양성에는 도원수 장만이 5,000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으며, 평양성은 인조 때 대대적인 보수로 인해 강력한 요새가 되었다. 따라서 이괄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단기전으로 끝내기 위해서 주요 요새는 지나쳐야 했다. 그래서 실제로 이괄은 빠른 시간 내에, 그리고 관군의 주력 부대를 완전히 섬멸함으로써 한양으로 진군한다.
이괄의 반란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괄은 즉각 부원수의 직책을 이용해 인근 수령들에게 사람을 보냈다.
'급한 군사 회의가 있으니, 모두 영변으로 출두하라!'
그리하여 영변 인근의 고을에서 수령들이 달려왔으며, 이괄은 이들을 모두 붙잡아 회유하였다. 몇몇은 이괄에게 투항하였고, 투항하지 않는 자는 감금되었다. 한편 이괄은 한명련이란 장수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마침 금부도사가 들이닥쳐 한명련을 한양으로 압송하고 있었다. 한명련 역시 이괄처럼 '무고'에 의해 역모 고변 사건 때 이름이 나왔던 사람이다. 이괄은 즉각 자신이 항왜병(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일본군)을 보내 한명련을 구원하게 하였다. 항왜병은금부도사를 추격해목을 베어 한명련을 구출하였고, 억울한 한명련은 이괄에게 합류하였다.
'내 억울히 잡혀갔는데, 그냥 죽든 반역해서 죽든 똑같은 죽음이다!'
영변에서 이괄의 포로가 되었던 남두방은 즉각 탈출하여 남이홍에게 이괄의 반역을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남이홍은 도원수 장만에게 이괄의 반역을 보고했으며, 장만은 즉각 한양에 장계를 올렸다. 장만은 즉각 평안도 각지, 심지어는 국경 지역인 의주까지 전령을 보내 모든 관군을 총집결하게 하였다. 한편 이괄은 산속 샛길이나 오솔길, 골짜기 등을 통해 이동하여관군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났으며, 보급은 인근 고을에 들어가 쌀과 군수품 등을 챙긴 뒤 신속하게 빠져나오는 방법을 사용했다. 관군은 감히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한편 안주성에 주둔하고 있었던 정충신은 인근 수령으로 하여금 수백의 군사로 안주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즉각 홀몸으로 평양을 향해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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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 : 네 어찌 내 명령도 없이 주둔지를 이탈하였는가? 마땅히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정충신 : 도원수 대감!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적의 계획은 빨리 한양으로 진군하려는 것이기에,
차라리 외딴 성을 고수하고 있는 것보다는 평양에 와서 원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생각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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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도 이에 수긍하고, 안주성에 정예 중기병 100명을 보내 방비하게 하였다. 한편 이때 전령이 도착했다.
전령 : 도원수 대감! 역적의 무리가 청천강을 건너 개천에 진입했나이다!
정충신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이괄은 안주를 치는 것이 아닌, 즉각 안주를 우회하려던 것이었다. 정충신은 과연 정세를 보는 눈이 있었고, 이괄도 반란을 일으키고 나서 측근 장수들에게 정충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장수는 내 상대가 안된다. 다만 정충신 이 사람은 결코 가벼이 보지 말라."
이괄의 반역 소식은 즉각 한양에 전해졌으며, 한양은 혼란에 빠졌다. 인조는 즉각 각지에 어명을 내려 동원령을 선포했으며, 한양 내에 있던 이괄의 가족들을 모두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이괄과 내통할 염려가 있던 혐의자 39명을 모두 참수하였다.
1월 26일, 이괄의 군대는 계속 남하하여 인근 고을에서 쌀을 탈취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한편 장만은 평양에서 3,000여 명의 관군을 징집했으며, 때마침 유비가 의주에서 국경 수비대 3,000명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큰 문제였다.
정충신 : 후금 군대가 국경에서 날로 증강되고 있는데, 국경 수비대는 철수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장만 : 형세를 보아 내 알아서 할 것이다.
의주부윤 유비가 이끈 군대가 내려오면 장만에게는 큰 힘이 되었지만, 갑자기 후금이 도발하면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임경업이 백마 산성에 400명의 군사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이것으로는 국경 방위는 매우 불안하였다. 한편 이괄군을 추격하지 않는 장만에 대해서 조정 대신들의 비난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인조는 장만에게 어명을 내렸다.
'역적 무리가 이미 자산을 통과했는데, 관군이 1번도 교전하지 않으니 그 까닭을 과인은 모르겠다. 용맹스러운 장수와 날쌘 기마병이 있거늘, 역적의 무리가 무엇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가?'
이때 남이홍이 장만에게 좋은 계책을 건의했다. 아직 이괄 휘하의 장수들의 마음이 동요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회유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이괄 휘하에는 이윤서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장만 본영에는 이윤서의 하인이 있었다. 장만은 이윤서의 하인을 잘 대접해주고 이윤서에게 투항 권유 편지를 써서 주었다. 그리고 장만은 그 하인에게 상금을 주었지만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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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서 하인 : 이 글을 전함으로써 주인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만으로 이 종으로서는 다행한 일입니다.
재물은 받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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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윤서는 즉각 투항하였으며, 이때 이윤서가 거느렸던 북방군 4,000여 명은 와해되었다.
이윤서 : 우리들은 조국을 지키는 병사다, 북방군은 역적 이괄을 따르지 말거라!
이윤서의 투항으로 장만은 싱글벙글해졌다. 그리하여 경계가 풀어졌으며, 유비의 국경 수비대 3,000여 명을 철수시켰다. 그렇게 승리감에 도취된 장만이었지만, 정작 이괄은 관군의 레이더망을 벗어난 상태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만은 분견대를 조직하여 각지에 파견했으며, 황해 병사 변흡에게는 관군 1,000여 명을 데리고 곳곳을 순찰하라 지시하였다. 그러나 분견대와 변흡은 이괄의 흔적을 찾지 못했으며, 장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전령이 소식을 들고 평양 원수부(장만 지휘부)에 달려왔다.
'이윤서가 투항한 틈을 타서, 이괄은 이미 대동강을 도하했습니다!'
이괄이 대동강을 건넜다는 의미는, 이괄의 군대가 평양에 있는 장만군의 배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즉 평안도를 넘어, 황해도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장만은 즉각 정충신으로 하여금 이괄을 추격하게 했으며, 정충신의 1,800 군사는 대동강을 도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동강 주변에 배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하루 더 소요되었다.
장만은 이괄이 황해도로 들어가기 전에, 평안도- 황해도 접경지에 차단막을 설치하라 지시했다. 그리하여 관군은 평안도 중화에 차단선을 설치하고 있었으며, 그러나 이미 그 사이 이괄은 황해도로 진입한 뒤였다. 관군은 이괄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현재 어디로 진출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괄은 즉각 황해도 황주를 지나쳤는데, 뒤에서는 계속해서 정충신이 추격하고 있었다. 이괄은 지금까지 전투다운 전투는 치르지 않고 계속 이동했지만, 병사들의 군심이 어지러웠기에 제대로 전투를 벌여 사기를 올릴 필요성이 있었다. 2월 4일, 황주 신교에서 이괄과 정충신의 군대가 충돌하였다.
<황주 전투>
2월 4일, 정충신이 이끈 관군은 황주 들판에 진을 쳤다. 정충신은 좌익에 유효걸의 정예 기병을, 우익에는 조총병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중익에는 자신이 이끈 본대와 선봉 박영서를 배치하였다.
빨간색 : 이괄군 배치
파란색 : 관군 배치
당시 정충신의 관군 부대는 이윤서의 항복 때처럼 이괄이 항복하리라 생각하여 사기가 높았다. 게다가 이괄의 부하 장수인 허전, 송립이 1,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투항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이로 인해 관군은 경계를 풀게 되었으며, 이괄은 이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전, 송립의 1,000여 명의 군대가 흩어졌으며, 보이지 않던 이괄의 군대가 갑자기 정면에 나타났다.
<허전, 송립은 이괄과 한명련의 계책으로 거짓 투항한 것임>
그리하여 정충신의 관군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그때였다.
악명 높기로 자자했던 이괄 휘하의 항왜병이 일제히 칼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관군으로 달려왔다. 항왜병의 돌격으로 인해 관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으며, 군심이 동요하여 전열에 틈새가 생겼다. 그때 이괄은 전군에 총공격 명령을 내림으로써 전군을 관군에 그대로 밀어붙였다. 정충신은 이괄이 전군을 그대로 밀어붙이리라곤 상상도 못 했고, 관군들은 이 기세에 눌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이괄군의 직공에 선봉 박영서는 그대로 전열이 와해되어 패주 했으며, 유효걸의 정예 기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장돈 휘하의 조총병 1,000여 명은 이괄군을 향해 계속 발사했으나, 이괄군은 두려워하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이에 장돈의 군대가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전열이 완전 붕괴되면서 선봉 부대 전부 퇴각하게 되었다. 정충신은 후퇴 명령을 내렸으며, 이괄은 이 기회를 이용해 더 밀어붙였다. 한편 박영서와 유효걸은 이괄군에게 포위당했으며, 박영서는 자신의 칼로 이괄군을 하나씩 베어 넘겼다. 그러나 마침내 힘이 다하자 이괄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너는 부원수가 되어 변방을 방어하는 직책을 맡아 임금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받았거늘, 무엇이 부족하여 반역할 생각을 하였느냐!!!'
그러나 이괄군이 칼을 들고 달려들어 박영서의 목을 베었다. 박영서는 손으로 목을 잡고 그대로 쓰러졌으며, 유효걸은 자신의 하인과 함께 몽둥이를 들고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틈이 보이자 유효걸은 그 틈을 타서 도망쳤으며, 하인은 목이 잘려 죽고 말았다.
정충신은 이 하룻밤 사이에 2,000여 명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으며, 많은 군수 물자를 상실하였다. 이 전투에서 정충신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야 했으며, 그러나 장만은 패전의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고 정충신을 용서하는 장계를 한양의 인조에게 올렸다. 장만은 우선 황주 후방으로 후퇴하여 병력을 재정비하였으며, 흩어진 병사들을 합류시켰다. 이렇게 대동강을 건넌 이괄은 황해도에서 관군을 격파함으로써 그 군대의 사기가 크게 충천하였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이괄은 예성강 상류로 진격하기에 이른다. 한편 장만은 2월 6일 밤에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정충신은 다시 한번 이괄을 잡기 위해 장만의 배려로 병력을 이끌고 다시 한번 추격하였다.
이괄은 예성강을 돌파하기 위해 그대로 강행 돌진한다. 뒤에서는 정충신이 추격하고 있었으며, 앞에는 예성강에 조선 관군이 있었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황해 감사 임서가 추격하고 있었다. 이괄은 3면에서 포위당한 형국이었다.
한편 한양에서는 정충신이 황주에서 대패했다는 장계가 올라왔다. 이로 인해 대신들 일부는 가족들을 피난시켰으며, 이귀는 자신이 직접 임진강을 방어하겠다고 자원했다. 한양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인조는 매우 분노하였다.
"우리에겐 정예병이 있거늘, 어찌 역적의 무리가 이 강토를 마음대로 유린하게 내버려두는 것인가!"
그러는 사이, 2월 7일에 이괄의 군대는 예성강 상류에 당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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