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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남침 승인과정

|||||||||||||| 2020. 9. 21.

북한의 남침 승인과정

때는 1949년 6월...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면서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김일성- "형님들, 내래 남조선을 좀 쳐야겠어요. 좀 도와주세요!"

마오쩌둥- "안돼"

스탈린- "안돼"

이에 스탈린은 마오쩌뚱이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 김일성의 침공계획에 대한 마오의 생각을 물어봤다.

"마오쩌뚱 동지, 김일성이 자꾸 남한을 침공하겠다는데 어찌 생각합니까?"

"음.. 저한테도 부탁하고 갔지요... 뭐 기본적으론 오케인데, 만일 미국이 개입하면 큰일 나요. 설레설레..."

(속마음:내 우선순위는 지금 장개석이 있는 타이완이지 남조선이 아님)

(돌겠네.. 마오쩌둥 이타 이완에 힘 빼기 전에 얼른 힘을 빌어와야 하는데ㅜㅜ)

그런데, 오비이락이라고... 태평양 저 멀리서 김일성 희소식 이하나 들려온다.

1950년 1 월딘 애치슨이(Dean Acheson) 소위 '애치슨 선언'을 발표했다. 그의 정책연설은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밀어냈다. 대만도 밀어내고... 일본은 포함시켰다.

"미국의 태평양 지역 방위선은 필리핀에서 시작해 일본 열도를 꿰뚫고 지나갑니다"

선언은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애치슨 선언 이후 한반도의 미군을 철수시켰다. 미의회에 선한 국을 위한 원조 법안이 상당한 저항을 받고 있던 시절이다.

애치슨 라인

누가 제일 좋아했을까? 김일성이었을 것이다. 한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 포함되지 않으니...

이러던 중 1950년 4월 스탈린은 종전의 입장을 번복했다. 모스크바에 온 김일성의 요청에 "녹색신호"를 보냈다.

"김일성 동무, 국제정세가 바뀌었으니 한번 해보시오"

비밀이 해제된 당시 소련의 외교문서를 보면 내용이 이렇다.

"스탈린 동지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허락하기에 충분할 만큼 국제정세가 변했음을 김일성에게 확인했다"

이미 소련이 핵폭탄을 보유했고, 중 국과도 동맹을 맺었으니 미국이 쉽게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스탈린은 갑자기 무슨 배짱으로 이런 결단을 내렸을까?

바로 이문서가 결정적이었다.

NSC-48/2라는 이름을 가 진미 국 의초 극비문서이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NSC)가 만든 정책문서인데, 암튼 이 걸스 탈린이 보게 된다. 내용을 보니 한국은 미국의 방어선에서 진짜로 빠져있었다. 참 고로 이 건 도널드 매클린이라는 영국 출신 초고 렙스 파이가 소련에 넘겼다. 이 스파이는 마셜플랜 세부내용도 팔아먹었고, 나중엔 아예 소련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스탈린은 얼마나 철두철미하고 교활한 지도 자였는지, 아래와 같은 덕담을 잊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유럽 상황 때문에 바쁘니 도움이 나지원을 바라지 마시오. 만약 김일성 당신이 얼굴을 한대 쥐어 박혀도 나는 손도 까닥 안 할 거요...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마오쩌둥에게 청하시오."

(하... 소련 저 거이 고작 정신력 지원... 내래 마오쩌둥을 만나야겠군. 베이징으로 가야지)

살짝 화난 김일성은 마오쩌뚱에게 도움을 청하러 1950년 5월 13일,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갔다.

"마오 형님, 내래 스탈린 형님으로부터 남침 승인을 받았습니다!"

"음... 진짜냐? 근데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

"내래 2-3주 안에 끝내겠시오. 미군은 그사이에 못 올 거라요!"

"음.. 그래? 그럼 뭐가 필요한데?..."

"(거만하게) 우리 자체 군사력과 남한 내 공산당 게릴라(남로당)의 힘으로 해결하겠시오! 단, 북조선-중국 국경에 3개 부대를 배치해주시오."

이때부터 소련과 중국 사이에 선진위 파악을 위해 분주하게 교신이 오갔다. 중간에서 말을 옮기며 브리지 역할을 하는 김일성의 거짓 여부를 확인해야 하니...

김일성과의 회담을 끝낸 즉시 마오쩌둥은 이인자인 저 우언 라이를 시켜 모스크바에 전신을 보냈다.

"스탈린 동지, 당신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승인한 게 맞는지 조속히 대답해주시오"

다음날 모스크바에서 답은 이렇게 돌아와.

"북한의 남침계획에 동의했지만 제한을 두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 및 한국의 동지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고 중국 동지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결정은 추후 토의에 맡기고 연기한다"

게다가 여기에 하나를 덧붙였어.

"대화 의상 세한 내용은 한국 동지들이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다"

사실상 승인 과거부의 책임을 모두 마오쩌뚱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베이징의 추가 질문을 사전에 차단해버린 거다.

노회 한 스탈린이 마오쩌둥을 갖고 논게 어디 한 두 번이어야지... 어쩌면 김일성이 마오를 가지고 논 것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김일성은 의기양양하게 평양으로 돌아와 소련과 중국의 승인을 얻어냈음을 자랑하고 남침을 준비한다.

그리고 6월 25일 선전포고 없는 남침이 시작된 거다.

트루먼- "빨갱이 놈들... 우리 계획을 어떻게 알고 허를 찔렀지?"

뭐긴 뭐야. NSC-48/2 비밀문서 관리나 잘하시지.

여기까 지가 6.25 남침이 전까지의 스토리이다.

참고로 마오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잉'은 한 국전에 참전해서 전사했다.

마오쩌둥의 부자

당시 마오쩌둥의 아들사랑이 컸다고 한다. VIP 자 제인지라 중국군 총사령관 펑더화이(팽덕회) 에게 손수 맡겨진 마오안잉은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파병됐다.

근데 얘는... 야전 동굴 상황실에서 아침밥으로 계란볶음밥을 만들어 먹다가 날아온 미군 B-26 폭격기의 네이팜탄 맞고 전사했다. 러시 아산 시계만 알아볼 수 있게 타 버렸다고 한다.

아들의 죽음을 들은 마오의 말이 걸작이지..."전쟁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

그리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유해는 북한에 묻을 것을 지시했다.

그래서 현재 이렇게 평북 어딘가의 기념 묘역에 안장되어 북한군 의장대의 호위를 받고 있다. 지금도 중국 공산 당고 위급들 북한 가면 저기부터 참배한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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