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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화의 진실

|||||||||||||| 2020. 8. 24.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으로 서구 국가들은 열강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관찰하는 한 나라가 있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 끝에 위치한 섬나라 일본이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쇄국정책을 폈었던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를 완성시켰을까?

구미 사절단

이유는 일본이 미국에 의해 문호를 개방하면서다. 당시 일본에선 서구 열강의 힘에 놀라 일본도 서구 열강처럼 부국강병을 위해 산업혁명의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구미 사절단을 파견했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다.

메이지 일왕
영국 노동자

당시 영국에서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30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 서민들한테는 산업혁명은 그냥 등골 브레이커라 보면 된다.. 영국을 포함한 서구권은 산업혁명에 동원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농업을 일부러 고사시켰고 결국 수많은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빈민화 되어버림 덕분에 대다수 민중들의 생활은 거지로 전락했다.

대영제국

그러나 알다시피 영국 같은 경우엔 당시 대영제국이라고 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릴 정도로 전 대륙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식민지가 있었고 여기서 약탈을 했고 이는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당시는 세계 해양을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 간의 긴밀한 무역, 관세, 동맹을 통해 산업혁명을 꾸려나갈 힘을 마련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강국 러시아와 미국 같은 경우엔 워낙 땅이 넓다 보니 부존자원이 풍부해 이걸 바탕으로 이렇다 할 식민지 없이 산업혁명을 성공했다.

그런데 일본은? 자원이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일본 열도 자체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들인 데다 쌀 이외에 이렇다 할 자원 전무 상태였다.. 한때 세계적인 은 산출 국이긴 했으나 은광도 1919세기경에 고갈돼 버리고 해외 수출한 상품은 전혀 없었다. 자원이 없어서 임진왜란 때 도공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가기까지 했었다.

결국 일본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산업혁명을 밀고 나갔고 민간 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에 미쓰이, 미쓰비시 같은 대지주 재벌들이 국가와 결탁해 서구의 기술, 기계, 자원을, 기계, 도입해 밀고 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죽어라 일했지만, 자금이 많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주변에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열강들이 있어 자본 기술을 대여해줄 국가가 있는 것도 아녔으니 이도 저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한줄기 빛이! 바로 청일전쟁이 터졌다. 이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22억 량이 넘는 엄청난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 일본은 서구에서 방직기를 수입해 산업혁명을 준비했었으나이 배상금은 모조리 중공업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무리 미친 듯이 일해봐야 전쟁해서 얻는 이득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음 전쟁을 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세계가 망으로 이어진 글로벌 시대가 아닌 강한 놈이 약자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진나라는 먹히거나 파산이던 시대였다.

결국 조선소, 제철소등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30년 일한다고 서구에 비해 형편없었던 건 똑같았었다. 오죽했으면 러일전쟁 때도 군함, 대포, 기관총 등, 대포, 무기를 수입해야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몇십 년 흐른 후에 러일전쟁이 터졌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일본이 이기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러시아의 남하를 탐탁지 못하게 생각한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고 미국은 뒤에서 엄청난 지원을 했었다.

든든한 빽을 등에 업은 일본은 기적적으로 승전하고, 청일전쟁 때처럼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기대했으나 배상금은 0원, 0엔, 00원, 0엔, 0달러, 쌀 한 톨도 없었다. 일본 혼자 고생을 하다 끝나는 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장기전으로 가면 일본은 파산으로 자폭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파산까진 피했으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러일전쟁 때 동원된 농업 인구 대부분은 죽어버려 전국적인 대기근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히비야에서 일어난 대 폭동도 러일전쟁 후유증 때문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엄청난 지원을 해줬어도 고전해 농업인구 대부분을 소실해 버린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개판이었고 영국과 미국이 빚 갚으라고 요구를 했었다.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

이유는 러일전쟁 때 막대한 외채를 빌려 써서 결국 산업혁명 올 스톱됐다.

 1 차 대전 동맹상황

이런 일본을 구원해준 게 "제1차 세계대전"전쟁 특수 덕에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20~30% 이상을 웃돌고 벼락부자란 말까지 생겨났다. 일본 사회에선 '1차 대전 이후로 이런 호황은 첨이다' 란 말까지 있다고 하니 1차 대전이야 말로 일본의 근대화를 완성시켜주는 종결자임 결국 메이지유신으로 시작해 1차 대전 전쟁 특수로 마무리된다 하는 게 맞다.

이 전쟁 특수 덕에 일본 경제는 살아나고 조선의 식민지배를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넘겨버렸다. 러일전쟁으로 얻은 것이라고는 조선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조선에서 엄청나게 약탈해갔었다. 그러나 전쟁 특수로 좀 살아나자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도 완화시켜 문화통치로 바꿔버렸다. 이후 민족말살 정치로 위안부 마루타 등 반 인류적 대범죄를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반성은커녕 행사장마다 전범기 들고 설쳐되고 있다.

여하튼 이 전쟁 특수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일본은 자국 내 피해 0% 게다가 승전국 자리에 까지 올라 국제적 지위 상승까지 됐다. 그리고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은 후원하에 산업을 거대하게 키우고 일본 최대의 재벌이 된 미쓰비시는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일장기가 걸린 경복궁

그렇게 조선에는 대륙 진출을 할 길을 만들고 일본에는 거대한 중공업 단지를 육성해 비서구권 최초로 산업혁명을 완성시키게 됐다. 이러한 성공으로 1934년 미쓰비시에서도 자동차를 만들게 됐고 일본의 독자적인 항공기 생간국으로 부상했다. 이 외에도 서구에 의존해 온갖 전쟁무기를 수입하던 일본은 자국 내에서도 생산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 불황이 이어지자 영국 프랑스 등은 해외 식민지에서 착취에 버텼지만 일본은 식민지는커녕 이제 좀 숨 좀 쉬나 싶던 찰나에 또 불황이 이어져 해결책으로 중국을 침략했다. 일본은 경제가 불안하면 툭하면 쳐들어가고 전쟁 일으킨 게 특징이었다.

원자폭탄을 맞은 나가사키 전후 모습

그러다 미국한테 전쟁을 하다가 핵 두방 맞고 본토가 쑥대밭이 되고, 일본 근대시대는 이렇게 전쟁으로 살아나고 전쟁으로 죽게 되었다.

마치며 일본의 완전한 근대화는 메이지유신 때가 아니라 1차 대전 전쟁 특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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