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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2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전투의 재구성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전투의 재구성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성이며, 조선 시대에는 수도권 일대를 방어하는 중요 요새였다. 1624년(인조 2)에 대대적인 축성 작업이 시작되었고, 1636년(인조 14)에는 수어사 이시백이 1만 2천 7백여 명의 대군을 동원하여 대규모 기동 훈련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남한산성에는 4개의 문(門)과 관아와 창고 등이 있었고, 또한 국왕의 임시 처소인 행궁과 함께 군사 훈련을 위한 연무장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경기도 광주의 토지 2천여 결을 남한산성에 배속하게 하여, 수비군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의 둘레는 약 6천여 보(步) 정도라고 한다(기록마다 다 다름). 1636년(인조 14), 드디어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 경내로 침략하였다. 청군은 .. 역사 2020. 10. 23.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 전투 당시의 조선군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 전투 당시의 조선군 청군의 남한산성 포위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동안 소규모 접전에서 조선군은 수십 명의 청군을 사살했다. 청군은 1636년 12월 23일, 1만여 명의 대군을 동원해 남한산성 전체를 포위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다. 조선군 장군이 뛰어와 인조에게 아뢰기를, "전하, 오랑캐의 공세가 재개되었는데, 그 수가 1만여 명에 달합니다!" 인조가 이르기를, "내가 직접 성벽으로 거동해 오랑캐와 싸우는 군사들을 위로하겠다. 융복(임금이 입는 군복)을 가져오라!" 인조는 융복 차림으로 성벽으로 거동했고, 왕이 전장에 몸을 드려내자 조선군은 모두 엎드려 절을 했고, 어떤 조선군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있었다. "저희들은 모든 힘을 다해 오랑캐의 목을 베어 반드시 전.. 역사 2020.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