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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3

지평리 전투, 한국 전쟁 판세를 바꾸고 승리한 전투 한국 전쟁 판세를 바꾸고, 승리한 지평리 전투 가장 춥고 암울하게 시작됐던 1951년. 1월이 지나가자 서서히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중공군이 6ㆍ25 전쟁에 참전한 초기에는 여기저기에서 신출귀몰하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UN군을 밀어붙였으나, 그 실체를 알고 보니 중공군의 전술은 신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낯선 것뿐이었고, UN군은 중공군이 보급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보급에 문제가 많은 중공군의 약점을 간파하였다. 그러나 계속된 후퇴로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으며,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전세를 역전시킬만한 전환점이 필요하였다.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는 중부전선에 집결한 공산군 주력을 섬멸한다면 아군의 사기를 앙양하고 더불어 서울 탈환에 .. 역사 2020. 9. 30.
한국 전쟁 신속한 남침과 미국의 참전 한국 전쟁 신속한 남침과 미국의 참전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우리 10만 명 vs. 북한 20만 명 (팔로군 출신 높은 레벨 5만 명 포함) 화력은 비교 자체가 어렵고, 여기에 자주포 242문은 물론, 장갑차, 항공기까지 준비된 전력을 막아낼까.... 전력상 누가 와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 (John Muccio)는 북한의 선전 포고 없는 기습 침략 소식을 즉시 워싱턴으로 전했고 트루먼은 오랜만의 휴가를 즐기다 매우 화를 냈다. 참고로 당시 트루먼은 고향 미주리주에서 휴가 중, 애치슨 국무장관은 메릴랜드의 농장에서 휴가 중이었다. 꿀 같던 휴가에서 즉각 워싱턴으로 복귀한 트루먼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안전보장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한다. 주미대사 장면 (張勉, John.. 역사 2020. 9. 25.
윌튼 워커 장군 - 한국전쟁의 영웅 윌튼 워커 장군 - 한국전쟁의 영웅 워커 장군을 이름은 들어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아마도 그건 워커힐 호텔 때문 일 것이다. 맞다. 워커힐(Walker Hill)은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거다. 흔히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만 기억하지 워커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다. 워커 장군(1889 ~ 1950)의 정식 이름은 Walton Harris Walker이다. 그나마 워커 장군을 아는 사람들도 워커힐의 이름이 워커 장군이 전사한 곳이 워커힐 부근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워커 장군이 전사한 곳은 현재 서울 도봉동 도봉역 2번 출구 자리이다. 워커 장군은 1912년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기관총 부대의 중대장으로 참전하면서 군생활을 시작.. 역사 202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