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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방어선3

한국 전쟁 다부동 전투 한국 전쟁 다부동 전투 우리 국군은 7월 25일까지 하동, 거창, 김천, 함안, 안동 등에서 적을 저지했으나 병력도 부족하고 후퇴하면서 방어 진지를 구축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공간을 내주며 시간을 벌었다. 시간을 벌어야 부산항으로 병사와 무기 그리고 군수물자를 보충할 수 있었다. 당시 분위기를 알려주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1950년 8월, 다부동 전장에서 병사들끼리 나누던 이야기다. "맥아더는 막아라 막아라!! 며 야단이고 워커는 웍웍! 소리만 지르며 화를 내고 딘은 대전에서 띵~하고 갔다." 참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다. 그러면 당시 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장군에 대해 잠시 알아보겠다. 워커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시 조지 패튼의 제3군 예하 20 군단장으로 ‘워커 불독’(Walker B.. 역사 2020. 9. 27.
한국 전쟁 신속한 남침과 미국의 참전 한국 전쟁 신속한 남침과 미국의 참전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우리 10만 명 vs. 북한 20만 명 (팔로군 출신 높은 레벨 5만 명 포함) 화력은 비교 자체가 어렵고, 여기에 자주포 242문은 물론, 장갑차, 항공기까지 준비된 전력을 막아낼까.... 전력상 누가 와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 (John Muccio)는 북한의 선전 포고 없는 기습 침략 소식을 즉시 워싱턴으로 전했고 트루먼은 오랜만의 휴가를 즐기다 매우 화를 냈다. 참고로 당시 트루먼은 고향 미주리주에서 휴가 중, 애치슨 국무장관은 메릴랜드의 농장에서 휴가 중이었다. 꿀 같던 휴가에서 즉각 워싱턴으로 복귀한 트루먼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안전보장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한다. 주미대사 장면 (張勉, John.. 역사 2020. 9. 25.
윌튼 워커 장군 - 한국전쟁의 영웅 윌튼 워커 장군 - 한국전쟁의 영웅 워커 장군을 이름은 들어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아마도 그건 워커힐 호텔 때문 일 것이다. 맞다. 워커힐(Walker Hill)은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거다. 흔히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만 기억하지 워커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다. 워커 장군(1889 ~ 1950)의 정식 이름은 Walton Harris Walker이다. 그나마 워커 장군을 아는 사람들도 워커힐의 이름이 워커 장군이 전사한 곳이 워커힐 부근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워커 장군이 전사한 곳은 현재 서울 도봉동 도봉역 2번 출구 자리이다. 워커 장군은 1912년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기관총 부대의 중대장으로 참전하면서 군생활을 시작.. 역사 202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