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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 영웅의 귀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 2020. 10. 2.

다큐 - 영웅의 귀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아프리카 대륙 동쪽끝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이곳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다

한국전 참전 기념탑은 2006년에 세워졌다

 

 

한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용사회관에는 한국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6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6.25 전쟁을 상세히 기억하는 노병들... 

그나마도 이젠 전쟁의 기억을 나눌 전우가 200여명밖에 남지않았다...

참전용사회관안에 있는 강뉴부대 전쟁박물관

6.25를 참전한 강뉴부대의 역사를 잊지않고 전우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들 스스로가 만든것이다

박물관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일마씨를 만났다

일마씨 집 벽면에는 6.25 관련 자료들이 있다

그중에는 한국에 파병을 보낸 셀라시에 황제도 있다

19살에 중기중대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일마씨

그는 여러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였다

전쟁직후 황제의 명령으로 6.25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는 일마씨

은퇴후에는 남은 기록을 모아 한국전쟁에 관한 회고록을 쓰고있다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6.25참전용사 방문행사에 초청을 받은것이다 

한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 

잔메다 광장에 참전지원병들이 집결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이들에게 초전박살이라는 뜻에 강뉴부대의 명칭과 부대기를 하사했다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당한 에티오피아

국제사회의 외면속에서 5년간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어야했다

2차세계대전 후 유엔은 또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했다

약한 나라의 설움을 잘알았던 셀라시에 황제는 앞장서서 파병에 동참했다 

대한민국을 도왔던 셀라시에 황제가 묻혀있는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해 황제가 직접 세운곳이다

여기엔 강뉴부대의 흔적이 있다 

6.25전쟁때 전사한 122명의 참전용사가 잠들어있는 곳

누구나 마땅히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셀라시에 황제의 호소에 참전으로 응했던 에티오피아의 꽂다운 청춘들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쓰러져간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것이다

일마씨가 이번엔 한 낡은집으로 안내했다

이분은 한국전쟁때 부상을 당한 테레다 메르샤씨

18살때 중공군의 폭격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분은 22살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불차 올레카씨 

중공군도 오줌을 지렸다던 전설의 강뉴부대

1951년 5월 7일

미군 수송선을타고 강뉴부대 1진은 부산항에 도착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더욱 더 치열해져갔다

1년만에 휴전회담이 개최됐지만 결국 결렬되고 전쟁의 불길은 다시 타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뉴부대는 강원도 화천에 투입되었다

당시 미군 7사단 32연대 소속 예비사단이였던 강뉴부대는 첫 전투부터 연일 승리했다.

이에 미군은 주력부대였던 31연대 대신 강뉴부대를 최전방에 투입했다.

 

이후 투입된 700고지와 602고지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적의 주 저항선을 북쪽으로 밀어올릴수있었다

타고난 전투력을 발휘한 강뉴부대에게 미 대통령 부대 표창이 수여됐다

밤낮없는 전투가 계속되었지만 결코 물러서지않았다 단 한번의 패배도없었던 강뉴부대

그 전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패배는 결코 있을수없다는 황제의 명령을 목숨걸고 지켰던 강뉴부대...

여기에 한국의 자유를 지킨다는 자긍심은 그들을 최고의 전사로 만들었다 

한국에 초청을 받은 또다른 참전용사 아사파 데미시씨다 

18살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아사파 데미시씨...

아사파씨의 아들은 현재 한국에서 살고있다 

최근 시력이 많이 나빠진 일마씨는 딸과 동행하기로 했다

일마씨가 가장 아끼는 훈장과 제복...

만약 한국에 또 전쟁이 난다면 적극적으로 싸울거라는 일마할아버지 ㅠㅠ 

다음날 

참전용사분들은 지부티에 도착했다

한국에 가기전 지부티항에 정착해있는 청해부대에게 초청을 받았다 

 

필! 승!

새파랗게 젊었던 그들이..한국을 지키기 위해 조국을 떠나던곳...

6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조국을 떠나 아프리카의 바다를 지키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환영해주는 군인들....

 

아사피씨의 아들과 손자가 직접 맞이해주었다

사진으로 보던 손자는 생각보다 훌쩍 컸다...

아사피씨가 에티오피아에서 사온 선물을 건네주었다

손자에게 옷을 입혀보았다 

아버지에게 등떠밀려 오게된 한국...

그에게 한국생활은 처음에 힘들었다 

롯데 월드타워 전망대에 방문하신 참전용사분들...

참전용사분들은 문화컬쳐를 받았다

한눈에 바라본 서울의 모습은 기대이상이었다!

전쟁당시 에티오피아보다 가난했던 나라가 반세기만에 이룬 눈부신 변화

한국의 놀라운 발전에 참전용사분들의 가슴은 벅차 올랐다 

육군 3사단에 방문한 참전용사분들 

젊은날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곳에 꼭 한번 오고싶었다던 참전용사분들...

하지만 강뉴부대 2진이 싸웠던곳은 현재 북한땅이 되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데...

이곳은 강뉴부대 2진에게는 특별한곳이었다...

1952년 3월 29일

강뉴부대 2진이 한국에 도착했다

강뉴부대는 중공군의 전초기지가 있는 철원 삼각고지를 점령하는 명령을 받는다

휴전회담이 난항을 겪는사이 전선에서는 뺏고 뺏기는 고지전이 계속되었다.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2년 7월 24일 낙타고지 전투였다.

 

계속되는 적의 포격으로 결국 퇴각할수밖에 없었다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철수 이러한 상황이 상관에게 보고됐다 

전사자 시신을 구출하기 위한 보병과 땅크부대의 합동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군땅크 넉대와 25명의 강뉴부대 수색대는 쏟아지는 적들의 포격을 피해 전우의 시신 4구를 수습해

본대로 귀환한다...

전우의 시신 조차 버려두지 않았던 피보다 뜨겁고 끈끈한 전우애 강뉴부대가 불패신화를 쓸수있었던 

또 다른 원동력이였다

춘천에 있는 참전기념탑... 

그리고 옆에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이 있다 

강뉴부대 참전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된 전시실... 

전쟁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듯 둘러보던 참전용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한 겨울전투 사진 한장...

단 한번의 패배도 없었던 강뉴부대의 가장 큰적은 매세운 겨울 추위였다

아프리카에서 온 강뉴부대원들에게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한국의 겨울날씨는 혹독했다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한국여행...

참전용사분들은 육군 5사단에 방문했다 

60여년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이곳 

군번줄을 목에 걸어주는 대대장... 

이번에는 K-1땅크 시범이 이어졌다 

일마씨가 강연장에 오셨다

1953년 4월 15일

셀라시에 황제는 세번째 강뉴부대를 파병했다 

유엔군은 경기도 연천북방의 중요한 요충지인 요크고지를 강뉴부대에게 맡겼다

휴전을 앞두고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중공군의 공격은 맹렬했다

하지만 강뉴부대는 끝내 요크고지를 지켜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이제남은건 포로교환

놀라운건 강뉴부대는 단 한명의 포로가 없었다 

122명의 전사자와 함께 강뉴부대의 영웅들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253전 253승을 남긴 전설의 부대! 

하지만 1974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참전용사들은 몰락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려다 쓰러져간 수많은 군인들이 잠들어있는곳....

전사자도 생존자도 모두 수많은 희생을 치른 전쟁...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만찬이 준비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6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한국에서 보낸 길고도 짧은 일주일...

일마씨는 에티오피아에서 챙겨온 소중한 자료를 전쟁 기념관에 기증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강뉴부대의 고귀한 헌신은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살아 숨쉴것이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 반세기...

아무런 대가없이 전쟁의 몸을 던진 영웅들이 있어 지켜낸 조국이었다!

당신들의 용기와 희생을 절대로 잊지않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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