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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 영웅의 귀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다큐 - 영웅의 귀환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아프리카 대륙 동쪽끝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이곳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다 한국전 참전 기념탑은 2006년에 세워졌다 한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용사회관에는 한국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6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6.25 전쟁을 상세히 기억하는 노병들... 그나마도 이젠 전쟁의 기억을 나눌 전우가 200여명밖에 남지않았다... 참전용사회관안에 있는 강뉴부대 전쟁박물관 6.25를 참전한 강뉴부대의 역사를 잊지않고 전우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들 스스로가 만든것이다 박물관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일마씨를 만났다 일마씨 집 벽면에는 6.25 관련 자료들이 있다 그중에는 한국에 파병을 보낸 셀라시에 황제도 있다 19살에 중기중대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일마씨 그는 여러훈장을.. 역사 2020. 10. 2.
한국 전쟁 다부동 전투 한국 전쟁 다부동 전투 우리 국군은 7월 25일까지 하동, 거창, 김천, 함안, 안동 등에서 적을 저지했으나 병력도 부족하고 후퇴하면서 방어 진지를 구축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공간을 내주며 시간을 벌었다. 시간을 벌어야 부산항으로 병사와 무기 그리고 군수물자를 보충할 수 있었다. 당시 분위기를 알려주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1950년 8월, 다부동 전장에서 병사들끼리 나누던 이야기다. "맥아더는 막아라 막아라!! 며 야단이고 워커는 웍웍! 소리만 지르며 화를 내고 딘은 대전에서 띵~하고 갔다." 참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다. 그러면 당시 8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장군에 대해 잠시 알아보겠다. 워커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시 조지 패튼의 제3군 예하 20 군단장으로 ‘워커 불독’(Walker B.. 역사 2020. 9. 27.
한국 전쟁 신속한 남침과 미국의 참전 한국 전쟁 신속한 남침과 미국의 참전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우리 10만 명 vs. 북한 20만 명 (팔로군 출신 높은 레벨 5만 명 포함) 화력은 비교 자체가 어렵고, 여기에 자주포 242문은 물론, 장갑차, 항공기까지 준비된 전력을 막아낼까.... 전력상 누가 와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 (John Muccio)는 북한의 선전 포고 없는 기습 침략 소식을 즉시 워싱턴으로 전했고 트루먼은 오랜만의 휴가를 즐기다 매우 화를 냈다. 참고로 당시 트루먼은 고향 미주리주에서 휴가 중, 애치슨 국무장관은 메릴랜드의 농장에서 휴가 중이었다. 꿀 같던 휴가에서 즉각 워싱턴으로 복귀한 트루먼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안전보장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한다. 주미대사 장면 (張勉, John.. 역사 2020. 9. 25.
북한의 남침 승인과정 북한의 남침 승인과정 때는 1949년 6월...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면서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김일성- "형님들, 내래 남조선을 좀 쳐야겠어요. 좀 도와주세요!" 마오쩌둥- "안돼" 스탈린- "안돼" 이에 스탈린은 마오쩌뚱이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 김일성의 침공계획에 대한 마오의 생각을 물어봤다. "마오쩌뚱 동지, 김일성이 자꾸 남한을 침공하겠다는데 어찌 생각합니까?" "음.. 저한테도 부탁하고 갔지요... 뭐 기본적으론 오케인데, 만일 미국이 개입하면 큰일 나요. 설레설레..." (속마음:내 우선순위는 지금 장개석이 있는 타이완이지 남조선이 아님) (돌겠네.. 마오쩌둥 이타 이완에 힘 빼기 전에 얼른 힘을 빌어와야 하는데ㅜㅜ) 그런데, 오비이락이라고... 태평양 저 멀.. 역사 2020. 9. 21.
한국 전쟁에서 중국의 참전과 공산군 재역전 한국 전쟁에서 중국의 참전과 공산군 재역전 1950년 10월 19일은 중국 인민지원군이 한반도 전역으로 참전하던 날이었다. 그날 우리 국군과 미군은 조선 인민군의 치열한 저항을 이겨내고 평양 점령에 성공하였다. 평양 점령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한의 국군 본부에서는 환성이 터졌다. 이때 평양 입성의 최선두에서 지휘한 백선엽 1 사단장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고 한다. "일개 월남(경계선을 지나 남쪽으로 넘음) 청년이 장군이 되어 한미 장병을 지휘하며 고향을 탈환하려 진군하는 감회를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오늘날 북한 지역인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평양에 먼저 입성하려는 우리 국군과 미군의 경쟁의식은 매우 치.. 역사 2020.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