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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5

수양대군(세조) - 조선의 군사력을 약화 시킨 역적 수양대군(세조) - 조선의 군사력을 약화 시킨 역적 조선왕조실록 中 문종이 수양 대군(문종의 동생, 세조)과 함께 부국강병에 대해 논하다 문종 대왕이 말하기를, "수양 대군(문종의 동생) 같은 사람을 병조 판서(국방부 장관)로 삼는다면 과인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세종 말년에 10년 넘게 국가의 정사를 대리 처리할 정도로 의욕을 쏟았던 문종. 얼굴이 잘 생기고 어린 나이에 외교적 예법에도 능해 중국 사신들이 탐낼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세자 시절 때 세종 말년 동안 너무 의욕적으로 일을 한 탓일까? 문종은 재위 2년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했고, 그의 어린 아들이 왕위에 집권했다(단종). "내가 영의정 부사와 병조 · 이조판서, 내외 병마 도통사(內外兵馬都統使)를 겸직할 것이니, 나의 뜻을 .. 역사 2020. 11. 13.
조선시대, 조선의 여진족 학살 조선시대, 조선의 여진족 학살 이 노토 부락은 좌우로 높은 산과 절벽이 있고 마을 안은 매우 넓다. 토지는 비옥하고 그 가운데로 큰 냇물이 흐르며 모든 부락들은 그 물을 끼고 살고 있다. 집들 역시 즐비하며 살림의 넉넉함은 다른 여진 부락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평소 여진족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그들 역시 가축에게 풀을 먹이며 곡식을 재배하는 등 평화롭고 목가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에서 불화살이 쏟아지더니, 맹렬한 굉음이 온 하늘을 준동하였다. 평화롭던 노토 부락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고, 절벽 위에서 불화살과 대포알이 쏟아졌다. 노토 부락민은 비명을 지르며 즉각 도망가기 시작했고, 마을은 금세 온 비명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모래 바람이 하늘을 가리더니, 정.. 역사 2020. 10. 17.
조선 시대, 왕의 북벌 추진과 신하들의 반대 조선 시대, 왕의 북벌 추진과 신하들의 반대 『성상(임금을 높이 부르는 말)이시여, 고구려를 침공하다 패퇴한 당 태종의 고사를 잊으셨습니까!』 당나라 황제 이세민은 청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수나라 말기의 여러 전장을 누비며, 마침내 통일 제국 당나라를 세우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이세민은 수나라 말기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나타난 여러 군웅들을 토벌하였고, 또한 돌궐을 정벌하고 서역을 원정하는 등 제국의 영향력을 서북방 변경에 떨쳤다. 그러나 이세민은 자신이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한 사업이 있었으니... 그는 10만여 명이 넘는 대병으로 고구려 원정을 감행하였고, 천하의 뛰어난 무장들 역시 원정에 참여하였다. 물론 이때 고구려는 요동 지역의 방어선이 붕괴되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이세민은 안시성.. 역사 2020. 10. 16.
조선 시대, 초기 부국강병을 꿈꾼 군주와 관료들 조선 시대, 초기 부국강병을 꿈꾼 군주와 관료들 고려 말기, 이성계의 활약 고려 말기, 수없이 많은 이민족의 준동으로 고려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홍건적 20만의 침공으로 고려 왕조는 수도가 함락되기도 했고, 왜구의 계속된 침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해안가 지방이 쓸쓸해졌고, 내륙 지방까지 왜구가 준동했다. 그때마다 고려 왕조는 이성계를 찾았으니, 이성계 군대는 이 난세에서 그야말로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1380년, 이성계가 이끈 친병(親兵)이 황산에서 1만여 명의 왜구를 대파했는데, 고작 70여 명의 왜구가 살아서 도망쳤다. 이성계는 항상 출정할 때마다 전장에서 소라로 만든 군사 악기를 부르게 했는데, 이는 이성계 군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저 소리는... 이것은 이성계의 차거(硨磲)로 만.. 역사 2020. 10. 15.
조선의 왜구 토벌 작전, 대마도 정벌 조선의 왜구 토벌 작전, 대마도 정벌 왜구를 정확하고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왜구는 '일본인 해적'을 의미한다. 한 정부의 명령에 통제를 받아서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군대가 아닌, 그냥 별개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대마도나 일본 본토에 거점을 잡았던 왜구들은 식량이 부족하거나 심심할 때 한반도에 상륙해서 연안 지역에 피해를 줬다. 조선이 나름 대마도 정벌 과정에서 조선군의 피해도 있었지만, 그래도 초기 조선사에 있어서 큰 의의가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다룰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의 기본적인 국방 정책은 '왠만하면 평화로 가되, 필요하면 정벌은 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주로 여진과 왜구에게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명나라와는 실질적 이익을 담보로 한 실용적 사대 관계) 조선은 고.. 역사 2020. 10. 4.